일본대중문화 수용에 관하여 -반일 감정 극복한 문화적 가치 판단으로 평가 -
문화 산업,체질 개선과 자주성 위시한 실정연구 필요 (충대신문)
`또 한번'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개방을 둘러싼 논의가 무성하다. 아니 `무성했다'는 과거형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정부의 `단계적 개방'선언에 의해 일본대중문화 개방을 둘러싼 논의는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된 셈 이니까.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일본문화 수입문제가 오 래전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문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측 고위 당국자의 애드벌룬 한 마디를 계기로 무성한 찬반논쟁이 진해된 끝에 일단 `시기상조'라는 공식적 언명으로 끝을 맺은 것이 그간에 반복된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단계적 개방'이라는 좀더 솔 직한 언명이 나온 것이 차이라 할 수 있고, 결국 그런 언명과 함께 일본 문화의 수입개방은 이제 공식적 차원에서도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이런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제기되곤 하던 `시기상조론'과 `개방줄가론'이 사실은 이미 내건 개방의 프로그램을 확정한 상태에서 다만 국민들의 반발을 점차 최소화하기 위한 위장전술에 지나지 않았음도 명백해진 셈이다. 이번에 재연된 논란에서 특징적인 점은 과거와 달리 개방반대론보다 개방론,혹은 개방불가피론이 우세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로서는 `시기상조론'의 위장을 걷고 개방을 공식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또 하나 이 문제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는 일본대중문화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늘 논의의 촛점이 개방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로 되어왔 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찬성론자들은 찬성을 함으로써 스스로 국제적 감각을 가진 합리론자쯤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반대론자들은 반대를 통해 스스로 민족문화를 걱정하는 민족주의자로서 할 바를 다 한 것으로 착각 해 온 것이다. 주기적으로 찬반론이 공방을 거듭하는 사이에 음으로 양으 로 일본문화는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왔고 이제는 넘쳐날대로 넘 쳐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처음에는 반대론자들이 압도적이었지만 차츰 많은 사람들이 일본문화가 넘쳐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 고 마침내 개방불가피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결국 허구적인 찬반 논쟁에 시간을 뺏기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응할 아무런 연구나 준비도 해 놓지 못한채 본격적인 개방시대를 맞게된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내심 개방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오랫동안 눈가림식으로 국민들을 기만해 온 정부는 물론,아무 실속없는 찬반론에 매몰되어 정작 일본문화의 물결이 배꼽까지 차오르도록 아무런 대책도 만 들어 내지 못한 이땅의 지식들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문제가 늘 명분으로 매몰되면서 내실있는 논의로 연 결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식민지배의 경험이 가져다 준 어쩔 수 없는 피해의식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과 다를 수 밖에 없 고, 그래서 예컨대 미국 문화의 문제와 달리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유독 명분을 둘러싼 논의가 앞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본문화에 대해 피해의식을 앞세울 수 밖에 없는 것은 따지고 보면 해방된지 50년이 다 되도록 일제 식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음은 물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껏 일본과의 관계를 대등한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 다. 또한 역으로 우리가 피해의식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일본과의 관계를 의연하게 풀어나갈 날은 여전히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일본문화의 문제를 푸는 첫번째 해법은 피해의식에 서 벗어나 일본문화의 문제를 예컨대 미국문화의 문제와 같은 수준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미국문화에 거의 무방비로 노 출되어 있는 것처럼 일본문화에 대해서도 노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 다. 그렇다면 마치 한쪽 뺨을 열심히 얻어맞고 있는 사람더러 다른쪽 뺨 도 마저 내놓아야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화의 `국적'이 어딘가하는 문제가 아 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가치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드 레곤볼'이나 `란마'가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일본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문화적 가치가 우리의 삶에 결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 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결국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문제는 단순한 한일관계나 국민감정의 차원 이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하게 걸려있는 문화적 자주성의 문제, 그리고 국 제화 시대를 맞는 우리 문화산업의 진로라는 문제로 귀착하지 않을 수 없 다. 지금까지 문화산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이랄게 없었다고 보는 것 이 정확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정부에서도 문화를 부차적인 영역으로 취급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뒤늦게나마 영상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 는 정책을 내세우는 등 인식 전환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런 나 부분적인 지원책 정도로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 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좀 더 근원적으로 대중문화 인력을 기르고 충원 하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오랜 독과점체제속에 서 왜곡될대로 왜곡된 문화산업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고 강화하는지 않으 면 안된다. 역시 끝까지 남는 문제는 문화적 자주성 혹은 주체성의 문제이다. 국제화의 추세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고 있고, 초국가적 문화산업의 위세속에 자본과 상품,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의 국적 자체가 점차 불분명해지는 상황속에서 과거와 같리 대중의 복되고 인간적이 삶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본다면, 우선 필요한 일은 우리 문화시장의 상황과 대중의 문화수용의 실태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이해일 터이다. 명분으로서 문화 적 자주성을 주장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정작 일본문화 수용자 대중은 그런 일본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적 자주성과 자생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한 일일 수 밖에 없다.